앙리 마티스 예술 작품
Henri Émile-Benoit Matisse, 1869~1954
작가 설명
💡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세 번의 실패를 딛고 현대 미술의 정점이 되기까지
이 글은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 앙리 마티스의 삶과 예술 철학을 다룹니다. 법학도에서 화가로 전향하게 된 계기부터 ‘야수파’라는 조롱을 찬사로 바꾼 과정, 그리고 노년의 투병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컷 아웃(종이 오리기)’ 기법까지, 그의 치열했던 예술 여정을 도슨트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 핵심 키워드
앙리 마티스, 야수파(Fauvism), 컷 아웃(Cut-outs), 색채의 마술사, 이카루스, 재즈(Jazz), 니스의 화가, 현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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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도슨트
그의 고향에서 "세 번 실패한 바보"로 부르는 이유는?
마티스의 고향 사람들은 그를 ‘세 번 실패한 패배자’라고 불렀습니다. 가업 계승 실패, 학업 실패, 그리고 화가로서의 실패까지.
고향의 한 노인은 “마티스, 그 멍청이 말이군요. 우리 마을에서 유명한 바보였습니다. 어르신들은 마티스를 ‘세 번 실패한 패배자’라고 불렀어요. 아버지 가게도 물려받지 못했고, 공부에도 실패했고, 화가가 돼서도 실패했으니까요. 어린아이들도 마티스보다는 더 그림을 잘 그릴걸요”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의 평범한 변호사 로펌의 서기였던 그에게 운명은 장난처럼 다가왔습니다. 평소 몸이 좋지 않았던 마티스는 서기 일을 하며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결국 1년동안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이때, 그의 어머니는 병원 생활이 힘들 마티스에게 “미술 도구”를 선물하였고, 이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그는 “붓을 쥔 순간, 이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라고 그 시절을 회고합니다.
이후 아버지는 그의 미술을 반대하였지만, 그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그가 또래 화가 지망생들에 비해 한참 뒤쳐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것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예술을 향한 집념은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지독한 몰입으로 나타났습니다.
"야수"라는 비평을 들은 사나이, 색채의 해방을 선언
마티스는 이후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였지만, 가난에 시달렸고 20대 내내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평범했고, 평가 역시 “나쁘지 않은 화가”정도였습니다. 열정넘쳤던 그에게도 시련은 다가왔고, 그 시련은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주변에는 그를 돕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특히 그의 아내 아멜라, 동료인 폴 시냐크와 존 러셀 등이 있습니다. 아멜라는 지금으로 치면 마케팅적으로 그의 작품을 구매한 사람에게 제비꽃 한 다발을 선물하였고, 폴 시냐크는 점표법으로 영감을, 존 러셀은 고흐의 그림을 선물하며 색채를 활용하는 법을 알려줬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통해 자기 혐오를 이겨내며, 1905년 그는 “본인의 화풍”을 찾게됩니다. 같은 해에 뜻이 맞는 동료들과 파리에서 가을 전람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마티스의 작품을 본 비평가들은 “야수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며 조롱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적인 색이 아닌, 작가의 감정이 읶는 대로 강렬하고 주관적인 색채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조롱’은 곧 새로운 미술 사조인 ‘야수파’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여론이 있으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길 마련입니다. 특히 러시아 출신 부자 세르게이 슈추킨은 그의 작품을 보고 “마티스 그림의 신선함에 마음이 미친 듯 떨린다. 눈을 감아도 그림이 보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후 마티스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명성 역시 드 높아졌습니다.
🎺 음표가 화음이 되듯, 색채는 삶이 된다.
앙리 마티스에게 색은 곧 음악, 춤, 글, 말과 같이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전에 다뤘던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이 생각이납니다.
그는 “음표 하나가 색채 하나라면, 여러 음표가 모여 화음을 이루듯 여러 색채는 삶을 이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캔버스 위에서 색채들은 서로 충돌하고 화해하며 삶의 기쁨과 평온을 노래합니다. 라이벌 피카소가 형태를 파괴하며 혁명을 일으켰다면, 마티스는 색채를 통해 지친 현대인에게 ‘안락의자’같은 휴식을 선물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꾸준히 그의 작품을 통해 평온과 휴식을 담았습니다.
✂️ 붓 대신 가위를 들다: 컷 아웃 기법
노년의 마티스는 암 수술과 합병증으로 더 이상 이젤 앞에 서 있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듯이, 붓 대신 가위를 들었습니다. 색칠한 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 아웃’ 기법은 붓보다 훨씬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를 뿜어냈습니다. 특히 그의 걸작 “이카루스”가 포함된 “<재즈>” 시리즈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허물며 현대 디자인과 패션(유니클로 협업 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 니스의 태양 아래서 완성한 다
인생의 후반기를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에서 보낸 마티스는 그곳의 눈부신 햇살을 닮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제작한 “<다발>”은 마치 그의 힘든 시절 곁에서 힘이 되어줬던 아내 아멜라에게 바치는 인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는 그의 잦은 바람과 여러 스캔들로 인해 약 40년간 해로를 끝으로, 이혼했습니다. 그래도 제비꽃 이야기 때문인지 해당 작품이 연결되어 꽃다발처럼 보입니다.
이카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