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 왜 현대미술의 아버지인가? 대표작·사과 정물화·삶 등 그의 대표작품 5 가지 살펴보기

폴 세잔 예술 작품

Paul Cézanne, 1839~1906

작가 설명

폴 세잔, 자화상, 현대미술 아버지, 인상주의, 사과

폴 세잔 –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

폴 세잔은 인상주의에서 출발해, 이후 입체주의-야수주의-추상미술까지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기초를 만든 프랑스 화가입니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그를 “우리 모두의 아버지(The Father to us all)”이라 하였습니다. 세잔의 작품은 사과 정물화, 생트 빅투아르 산,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등으로 대표되며, 사물과 자연의 겉모습이 아닌 내부 구조-본질-형태를 드러내기 위해 삼각뿔, 원형, 구의 형태를 활용한 그림 방식이 특징입니다.


💡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

 특히 그의 사과 정물화는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라는 말처럼, 정물화의 혁신을 이끌며 오늘날까지 ‘세잔과 사과’라는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세잔의 작품은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반스 재단 등 세계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1년 그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 현재 가치 약 3억 8천만 달러(한화 5,300억 원)에 거래되며 엄청난 가치를 보여줬습니다.

  • 대표작: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 1872)’는 미술 비평가들의 비판을 받았으나, 이 작품명에서 역설적으로 ‘인상주의’라는 사조가 탄생했습니다.
  • 화풍의 특징:
    클로드 모네는 물체의 고유 색이 아닌, 빛의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색과 찰나의 순간을 빠른 붓질과 순색의 병치로 포착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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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미술 이야기

✍️ 유복한 성장기와 그림에 대한 열정

폴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두 사람, 역대 가장 비싼 미술품
폴 세잔-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출처 오르세 미술관

폴 세잔은 1839년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은행가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을 전공했지만 밤마다 미술관 야간 코스를 수강하는 등 그림에 큰 흥미를 가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폴 세잔이 그의 은행 사업을 이어서 하길 원했지만, 그가 친구이자 소설가인 에밀 졸라와 함께 파리로 건너가며 서포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 파리 시절 - 인상주의와의 만남

폴 세잔, 모던 올댕피아, 마네, 올댕피아
폴 세잔-모던 올댕피아, 출처 오르세 미술관

1861년 파리로 간 세잔은 미켈란젤로, 루벤스, 티치아노의 작품을 묘사하며 기본기를 쌓고, 피사로-모네-르누아르와 교류했습니다. 특히 피사로는 폴 세잔이 스승처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파리에서 쉽게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파리의 유명 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여러번 떨어지고, 파리의 살롱전에 작품을 접수해도 떨어지기 일 수 였습니다. 심지어는 1863년에 낙선전에 그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외면받는 상황 속에 폴 세잔은 점점 주변 동료들에게 못된 행동을 보이며 멀어졌고, 마치 우울증에 걸린 듯 행동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멘토였던 카미유 피사로의 지지로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에 참여했고, 1877년 제3회 인상주의 전시에도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이때 그의 작품 “모던 올랭피아”가 공개되었는데, 이는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오마주 작품입니다.

✍️ 그의 평생 친구 "에밀 졸라"와의 결별

폴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폴 세잔-목욕하는 사람들, 출처 내셔널 갤러리(런던)

폴 세잔이 파리로 와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주었던 그의 평생 친구이자 소설가 “에밀 졸라”.

그는 폴 세잔이 힘든 파리 생활을 할때 함께 힘든 시절을 보낸 소설가였습니다. 그렇지만, 에밀 졸라가 먼저 작가로 성공하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고, 여러 사교 모임에 폴 세잔을 초대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그에게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후 에밀 졸라는 “뢰브르 걸작 또는 작품”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였고, 여느때처럼 세잔에게 책을 전달하였습니다. 해당 책은 예술가의 비극적 삶을 묘사하였는데, 작품의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라는 인물은 폴 세잔을 떠올리게 하였고, 그의 친구는 에밀 졸라 스스로를 투영한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폴 세잔은 에밀 졸라에게 편지를 썻고, 해당 편지가 마지막 연락이었다고 합니다.

네가 보내준 작품은 지금 막 고맙게 받았네. 훌륭한 추억의 증거에 대하여 감사하네. 그리고, 흘러간 그 옛 시절을 추억하면서 악수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하고 싶네”-폴 세잔-

✍️ 고향으로 돌아온 후: 세잔 예술의 완성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 프랑스, 정물화
폴 세잔-사과와 오렌지, 출처 오르세 미술관

폴 세잔은 아버지 몰래 결혼하고 아들까지 가졌다고 합니다. 이후 아버지에게 걸리게되어, 아버지의 지원이 끊겼다고 합니다.
1886년, 아버지가 사망하게 되고 세잔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여유있는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파리에서 힘든 생활 속 고향 엑상프로방스를 왔다갔다 배회하다 결국 정착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가 그의 예술적 변곡점을 만들어줍니다.

그는 엄청난 그림 연구와 새로운 시도를 하였고, 목욕하는 사람들-카드놀이하는 사람들-샤토 누아 등 작품이 이 시기에 탄생하게 됩니다. 1890년에는 당뇨병을 앓게 되면서 더 사회와의 교류를 끊고 작품 연구에 집중하는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시도 끝에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인상주의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빛을 표현하기 위해 색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빛이 주는 겉모습만 그린다. 라는 평을 내리며, 가벼운 겉모습이 아닌 모든 사물의 내면에 있는 본질을 그리겠다는 탐구와 실험을 시작합니다.
인물을 그리면 절대 인물의 움직임을 허용하지 않았기로 유명해서 그의 모델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는데, 그랬기 때문에 그가 정물화로 눈을 돌렸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후 그는 과일 중 가장 오래 보존된 과일이 사과였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 유독 사과가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탐구 끝에 그의 작품들은 형태의 구조, 무게감, 사물의 본질을 드러냈고, 그 결과 현대미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